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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매기·벚꽃동산
저자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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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의 매력, 담담함!
아일랜드의 저명한 극작가 숀 오케이시는 체호프에 관한 글에서 "체호프는 휘트먼과 견줄 수 있는 시인이며, 셰익스피어에 비길 수 있는 극작가요, 또한 위대한 인간의 모든 면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우리의 친구라는 점"이라며 체호프가 이 지구상에 많지 않은 거장들 중 진실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체호프가 서거한 지 벌써 한 세기가 도래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관심과 평가와 연구는 더욱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다. 오케이시의 평가처럼 그가 우리의 친구로 남아 있기 때문일까? 실제로 러시아의 여러 작가들 중에 체호프만큼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는 작가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체호프는 푸쉬킨처럼 화려한 기교도, 고골리처럼 번쩍이는 기지도,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전율을 느끼게 하지도, 톨스토이처럼 설교하지도 않으며, 고리키처럼 외치지도, 불가코프처럼 신랄하지도 않다. 그는 그저 담담하다. 그러면서도 그의 글은 독특한 맛과 향기가 있다.

그러나 이 담담함 속에 깃든 독특한 맛과 향기를 찾는 작업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실제로 고(故) 투르빈 교수는 러시아 작가 중에 가장 어려운 작가를 꼽으라면 자신은 주저없이 체호프를 지목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러시아의 많은 문학 연구가들도 이 의견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어쩌면 이런 단순함 속의 난해함이 체호프의 신비와 매력이 아닐까?
극작가 체호프, 지루함?
체호프의 희곡을 처음 읽는 사람은 작품의 산만함과 무료함에 당연히 권태를 느낀다. 단편작가로서 그토록 흥미 있고 유머러스한 작가가 어떻게 이리도 지루한 작품을 썼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어떤 사건을 전개시키려 하는지, 누굴 중심 인물로 봐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그래서 우리는 체호프를 그저 연극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작가 정도로만 생각한다. 정말 체호프는 재능 없는 극작가일까? 체호프의 희곡은 정말 지루함 그 자체일까? 죽은 지 100년도 채 되지 않은 그는 단순히 과거 속에 박제돼 남은 작가일까?

답은 아니다. 체호프는 연극을 다르게 봤다. 그는 당시 기존 연극이 보여주던 인위성과 잘 짜여진 틀을 거부했다. 인물을 선인과 악인으로 구분하던 연극을 거부했다. 화려하고 비장한 극적 갈등과 극적 음모 역시 거부했다. 그리고는 자신만의 연극 문법을 만들었다. 그 문법이 스타니슬라브스키의 말을 빌자면 "분위기 극"이 되고, 자신의 말로는 "인생 그 자체를 보여주는 극"인 것이다.

인생을 주연과 조연으로 구분할 수 있는가? 어느 누가 자신의 인생을 조연급의 인생 혹은 에피소드적 인물로 생각할 수 있는가? 우리는 누가 뭐래도 각자 인생의 주연들이다. 체호프의 인물을 주연과 조연으로 나눌 수 없음은 그런 이유에서다. 단지 누가 좀더 많이 가졌는가, 누가 좀더 재능이 있는가, 누가 좀더 배웠는가하는 정도의 문제일 뿐이다. 고리키가 자신의 희곡에서 등장인물을 자신이 사랑하는 인물과 미워하는 인물로 나눴다면 체호프는 자신의 모든 인물을 사랑한다. 『바냐 외삼촌』에서 바냐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러도 체호프는 그를 사랑스럽게 그린다. 우린 체호프 희곡의 어느 인물도 미워할 수가 없다.

체호프의 희곡에 갈등과 음모가 없다는 지적은 수없이 되풀이 됐다. 하지만 갈등과 음모 없이 어떻게 드라마가 되겠는가? 다만 체호프에게서는 다른 방법으로 나타날 뿐이다. 체호프에게서 이 갈등은 인물들 간의 충돌에서가 아니라 삶의 복잡함에서 온다. 인생(혹은 시간)이라는 무지막지한 힘 앞에서 인간은 그들이 약하다는 것 때문에 죄인이 될 뿐이다.
'인생 그 자체를 보여주는 극'
이런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스타니슬라브스키가 지적한 '분위기 극'이다. 그렇다면 분위기 극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존 희곡의 원칙과 다른 분위기로서 '물밑의 흐름', 'Sub-text'라는 말로 요약된다. 작품에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인물들이 먹고, 마시고, 떠들고, 화내고, 우는 행위 밑으로는 '인생' 그 자체가 흐른다. 일상적이며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 속에는 인생의 내적 아이러니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인물들이 있다. 체호프의 극은 "인생 그 자체를 보여주는 극"인 것이다. 이 짧은 지면에서 체호프의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의 드라마와 소설의 시학을 탐험해 보자.
감춤의 시학
체호프의 희곡을 다른 극처럼 발단, 전개, 절정 등으로 나눠가며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왜냐하면 그의 희곡의 플롯은 어떤 갈등도 사건도 등장하지 않고 '물밑의 흐름'을 따라가는 식이기 때문에 다른 작가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극', '서정적 드라마'(고리키)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추상적인 용어들이 갖는 비밀은 무엇인가? '분위기'라는 말로 우리는 너무 쉽게 체호프 드라마의 특징을 뭉뚱거리는 것은 아닌가? 분위기의 실체는 무엇이며, 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체호프 희곡을 '사건'과 '갈등'으로 파악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예술적 기법의 본질은 '감춤'의 시학이다. 실제로 그의 희곡에서 인물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사건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다. 무대에서는 사건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사건이 있더라도 무대 밖에서 벌어지는 식이다. 이는 체호프가 내부 세계를 묘사하는 '감춤'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이런 감춤의 시학을 보여주는 두드러진 장치 중 하나가 '휴지(pause)'다. 이 휴지는 극적 리듬과 함께 생각할 수 있는데 리듬의 움직임은 통상 휴지의 시스템으로 이뤄진다. 특히 대사 사이 리듬의 긴장감을 말로서가 아니라 '휴지' 시스템을 이용해 '침묵'으로 말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첫 번째 희곡 『후레자식』에서 '휴지'는 무려 120회에 달하고, 『갈매기』 32회, 『바냐 아저씨』 43회, 『세 자매』 60회, 『벚꽃 동산』 32회 등으로 이 기법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어쩌면 이같은 휴지의 시스템으로부터 체호프의 '숨겨진 텍스트'가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휴지와 함께 언어 사용의 함축성은 체호프 창작과정의 또 다른 특징이다. "체호프 예술 세계의 발전은 절제의 과정이며 압축의 과정이다."라고 적절하게 개진한 파페르느이의 말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체호프는 거북이처럼 머리와 발과 꼬리를 모두 몸 속으로 감춤으로써 내적 플롯을 유지한다.
우연의 시학
다음으로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은 소위 '우연의 시학'이다. 이것은 체호프의 대화 체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열쇠다. 우리는 체호프의 희곡에서 우연의 대사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예를 들어 『갈매기』에서 메드베젠코와 마샤의 첫 대사, 그리고 2막에서 전개되는 마샤의 대사 중에도 "아마 식사시간일 거예요. 아이구, 발 저려라."같은 예기치 않은 말과 행동이 있다. 『세 자매』 처음과 올가의 독백, 2막에서 체부트이킨이 신문을 읽으며 하는 말 "발자크, 베르디체프에서 결혼… 치치하르 지역에 천연두 만연!", 또 『바냐 외삼촌』 1막에서 마리나는 앞 뒤 상황과 무관하게 집 근처를 거닐며 "꼬꼬 꼬꼬…" 하고 닭을 불러모은다. 『벚꽃 동산』의 로파힌과 두냐샤의 대화에서, 그리고 곧 꽃을 들고 등장하는 에피호도프는 "꽃을 떨어뜨린다."는 지문에 따라 꽃을 떨어뜨린다.

이런 것들은 무엇일까? 연구가들은 "체호프에게는 '우연적' 대사가 많이 있다. 이런 것들은 어디서나 불필요한 허드렛 것들과 섞여 있다. 체호프의 컨텍스트 안에서 대화와 대사들은 내용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그저 삶의 자기 느낌을 표현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마샤의 "아이구, 발 저려라."에서 관객들은 그녀의 습관적인 삶의 지루함과 무거움을 느낄 수 있고, 체부트이킨이 읽는 신문 기사 내용을 통해 지루한 적막과 산만함, 무력함 등이 공존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닭 부르는 소리 역시 인물의 성격이 아닌 삶의 지루함을 드러내며, 에피호도프가 떨어뜨리는 꽃은 부유한 상인 로파힌과 함께 있는 여자를 보면서 지루한 삶에서의 한 점 에로틱한 상상을 암시하는 것일지 모른다. 체호프의 희곡에서 등장하는 이 '지루함'은 우연적 대사뿐 아니라 우연적 상황으로 '반복'되면서 체호프를 모르는 연출가들과 배우들을 어렵게 한다. 이렇듯 인물들이 '삶의 자기 느낌'을 주로 표현하는 것을 수히흐 교수는 '결론 없는' 표현의 '제로 상태의 정보'를 준다고 설명한다.
갈등의 시학
다음으로 체호프의 시학 특징 중 가장 중요한 극적 갈등에 관한 문제이다. 전통적으로 극에서 '갈등'은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간주돼 왔다. 체호프 이전 드라마의 원칙 중 하나인 갈등은 인물들의 모순과 충돌을 표면화시키고 이로 인해 극적 행동이 야기되고, 음모가 꾸며지고,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밝혀지는 것이다. 그러나 체호프에서는 다르다. 그의 작품에서의 갈등은 분위기, 반복, 우연성(단절), 휴지의 시스템 등에 밀려 드러나지도, 부각되지도 않는다.

실제로 체호프에게서 사건은 주변으로 밀려나고 중심 토대는 일상적이고 반복되는 삶의 편린들로 채워진다. "체호프에게서 극적 갈등 상황은 다양한 측면의 인물들의 의지적 모순 속에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도출된 상황적 모순 속에서 나타난다. 이 모순 앞에 개별적 의지는 무력하다." 이는 주인공의 행동이 끝까지 모티브화되지 않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중립화'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으로 이것이 체호프 이전의 작가들과의 변별성 중의 하나일 것이다.
감춤과 반복적인 우연 그리고 내재적 갈등 이런 것을 보여주는 체호프 드라마는 이전 극작 원칙과 다른 '분위기 극', '물밑의 흐름', 'Sub-text'라는 말로 일컬어졌다. 작품에서 인물들이 먹고, 마시고, 떠들고, 화내고, 울면 그 밑으로 '인생' 그 자체가 흐른다. 모든 인물들은 일상적이며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그러면서도 알 수 없는 인생의 내적 아이러니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간다. 이는 인생이라는 주어진 틀 안에서 그 자체로 잘못된 삶 또는 스트레오타입화된 왜곡된 세계를 살아가는, 그러면서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우리를 향한 체호프의 부드러운 질책이다. 그래서 체호프를 무대에 올리고자 한다면 그 주인공은 당연히 삶 그 자체가 돼야 한다. 삶의 연극을 위해서 기억해야 할 것은 무대에서 체호프를 '연기'하려 하기보다 진지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갈매기
유명한 여배우 아르카지나(트레플레프의 어머니)는 자신의 남자 친구인 작가 트리고린과 함께 고요하고 평화로운 호숫가 소린가의 영지를 방문한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만나게 되는데 사변적이면서 현실적인 교사 메드베젠코는 영지 관리인의 딸인 마샤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희망도 없는 트레플레프에 대한 짝사랑으로 열병을 앓는다. 새로운 예술을 꿈꾸는 극작가 트레플레프는 화려한 배우를 동경하는 니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니나는 당대 최고 작가이자 아르카지나의 애인인 트리고린을 사랑한다. 얽히고 설킨 사랑은 소린가의 영지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데….
벚꽃동산
5년 만에 파리에서 빈털털이로 돌아오는 라넵스카야 부인은 아름답고 영화로웠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현재의 그녀는 애인에게는 버림받았고 아름다운 영지는 빚으로 경매에 붙여질 상황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옛 농노의 아들 로파힌은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해 보지만 현실감각이 없는 라넵스카야 부인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라넵스카야 부인의 딸 아냐와 사변적인 대학생 트로피모프는 새로운 생활을 꿈꾸고, 라넵스카야 집의 살림을 맡고 있는 양딸 바랴는 로파힌과 이뤄질 듯 이뤄지지 않고, 라스카야 부인의 오빠 가예프는 불필요한 말만 늘어 놓는다. 무기력한 일상 속에서 시간은 흘러가고 드디어 경매가 시작되는데 뜻밖의 인물이 땅의 주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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